본문 바로가기

노무현에 대한 기억, 그리고

다가오는 6월, 그리고 민주투사 노무현2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창립에 참여한 노무현 변호사는 상임위원중 1명으로 선출되고 노동문제분과를 맡게 된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는 1985년에 강연회 개최, 성명서 발표, 양심수 면회 및 변론 등의 활동을 펼치는데, 노무현 변호사는 "학원안정법 찬반토론회"에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연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1985년 11월 25일 부산 YMCA 1층 강당에서 열린 '민주제 개헌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김광일 변호사와 함께 개헌의 방향과 실천과제에 대한 강연을 3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 강연회에는 200여명의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참석했다고 하며, 사보경찰이 녹음기를 소지하고 강당에 들어와 있다가 들켜서 쫓겨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시국은 점점 더 폭압적으로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의 기관지였던 '민주시민'에서는 대학생들의 구속, 야학교사 연행 등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실리고 있었다. 1986년 1월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주최 강연회가 경찰 및 정보기관의 방해로 무산되는 일이 발생했고, 단체 실무자들은 수시로 연행되었다.


급기야 1986년 6월에는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극심했다. 1986년 부산에서는 8월 이후 매주 한명 이상의 학생, 노동자, 교사가 구속되는 상황이었다. 1986년 11월 5일에는 부산산업대생(진성일 열사)이 군사독재에 항의하며 분신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7년 1월에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대 재학중이던 박종철 열사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되어 고문당한 끝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에 분노한 집회.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부산에서도 1987년 2월 7일 대각사(대각사는 부산시내에 있는 절이다)에서 '고 박종철군 부산시민추모제'가 개최되었다. 부산민주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부산민가협 등이 주최한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1만명의 부산시민이 참여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당시에 180여명이 연행되어 4명이 구속되었는데, 노무현 변호사는 그 집회건으로 불구속입건되었다.

1987년 3월 3일에는 다시 대각사앞에서 '고문추방 민주화 부산시민 평화대행진'이 열렸는데, 경찰이 봉쇄하는 바람에 가두시위로 이어졌다. 이 시위에서도 120여명이 연행되어 3명이 구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4.13. 호헌조치'라는 것을 한다. '호헌선언'이란 말은 그럴듯 하지만, 대통령 간선제(당시에는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지 않게 되어 있었다)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었고, 이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범 국민적 요구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각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부산에서는 한 노동자가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했고, 5월 3일에는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들이 단식기도에 들어간다.

부산에서는 5월 20일 서울보다 먼저 '호헌반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가 결성된다. 뒤에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로 개칭되는 이 조직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와 종교계, 통일민주당, 학생, 노동자 등이 참여했고, 상임위원장을 노무현 변호사가 맡았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조직>

공동대표 : 최성묵 목사(부산민주시민협의회 회장)
             박승원 신부(천주교 정의구현 부산교구 사제단 대표)
             김광남(부산민주화 실천 가족운동협의회 회장)
             권광식(부산지구 기독청년협의회 회장)
            박찬종(통일민주당 부산 제1지구당 위원장)
             서석재(통일민주당 부산 제2지구당 위원장)
            김정수(통일민주당 부산 제3지구당 위원장)
            문정수(통일민주당 부산 제6지구당 위원장)
            김상찬(민주헌정연구회 부산지부 대표)
            김종순(민주산악회 부산지부 대표)

상임집행위원장 : 노무현
상임집행위원 : 김기수, 김상찬, 김영수, 김용환, 김인호, 노무현, 문재인, 배갑상, 소암, 이광수, 이재만, 하일, 고호석, 김재구, 홍순오

정당, 종교계, 재야운동 세력이 총결집된 이런 조직에서 상임집행위원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5월 20일 당감성당에서 열린 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발족식에서 노무현 변호사는 개회사를 통해 '현정권의 반민족적, 반민주적 행위가 평화적 정권이양과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허울좋은 구실로 은폐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폭력적인 호헌을 저지하고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범국민운동의 대열에 모두 앞장설 것'을 촉구하면서, '군부독재정권의 무차별 탄압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승수 씀
('부산민주운동사'와 당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기관지였던 '민주시민' 1호부터 13호의 기록에 의존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