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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치 이야기

오바마식 풀뿌리 선거운동, 우리도 한다 : 2006년 과천 이야기


얼마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풀뿌리 선거운동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저는 2006년 경기도 과천시에 살고 있으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의원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었습니다. 비록 규모로 보면, 작은 규모의 선거였지만, 당시의 선거운동도 풀뿌리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벌인 선거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시민운동, 진보정당이 낸 공동후보 2명이 모두 시의원에 당선되는 성과도 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거는 돈을 많이 써야 하고 동원된 유급 선거운동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 무조건 큰 소리로 인사하는 천편일률적인 선거운동입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정치나 선거를 더 싫어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2006년 과천의 풀뿌리 선거운동은 중요한 경험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써 봅니다.  참고로 저는 내성적 성격을 타고 났는데, 많이 사회화가 되었지만 남의 선거운동을 대놓고 할 만큼 낯이 두꺼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한 선거운동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1. 예비후보 때
우리나라 선거법을 읽어보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게 되어 있습니다. 기성정당에 소속된 후보가 아니면 정말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비후보 제도가 생겨서 선거운동을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예비후보 때에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거리에서 명함을 주면서 지지호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후보 및 수행자 1인과 배우자 뿐입니다. 그외에 예비후보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사무실 설치, 현수막 걸기, 전체 세대의 10%에게 예비후보자 홍보물 보내기,  이메일로 정보보내기 뿐입니다. 이런 방법들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지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예비후보자 공약집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되어 있는 것같은데, 지방의원선거에서는 이런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비후보 기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후보를 지지해 줄 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알음알음으로 작성된 명단의 사람들에게는 이메일도 보내고 홍보물도 배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 선거운동에 필요한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고, 본 선거 홍보물도 준비하고, 참신한 선거운동 방식도 아이디어를 짜 내어 봐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본 선거운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2. 누가 선거운동을 하나?
후보가 출마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선거운동은 당연히 자원봉사로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주부들을 만나서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사실 돈받고 운동해주는 선거운동원이 하는 그런 선거운동을 할거면 굳이 후보가 출마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해서 선거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평소 지역에서 협동조합, 공부방, 학교운영위원회,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 참여해 온 주부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이런 저런 모임에 참여하고 있거나 선거운동을 도울 의사가 있는 아빠들도 엮었습니다. 이 분들은 출근하기 전 아침시간이나 주말에 짬을 내어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선거운동을 해 보니, 자원봉사자들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더군요. 지역에서 살다가 이사갔거나 지역 바깥에 있는 사람도 관계없습니다. 물론 이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출근시간, 오전, 오후, 저녁퇴근시간으로 나누어 중요한 길목에 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깨띠나 티셔츠를 할 사람도 정해서 적절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해서 길목마다 배치하는 식의 선거운동을 선거운동 기간 내에 계속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매일은 못하더라도 최대한 했구요. 주말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3.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나?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새로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대화방식의 선거운동'입니다. 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후보 외의 사람들도 직접 지지호소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 보통 일반적인 후보들은 유급 선거운동원들을 두고 이들이 어깨띠를 두르거나 티셔츠를 맞춰입고 인사를 하고 거리에서 율동을 하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합니다. 정말 지겨운 풍경입니다.

2006년 과천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최대한 조직했습니다. 그래서 본 선거운동 첫날 아침에 중요한 길목마다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는 어깨띠나 티셔츠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후보별로 어깨띠를 두르거나 티셔츠를 입을 수 있는 사람숫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명함을 돌릴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명함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권자들 한사람 한사람과 눈을 맞추면서 '대화방식의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첫날 선거운동을 하고 후보 홈페이지에 올린 소감문입니다. 


 
안녕하세요.

과천 6단지 주민이자 청계초등학교 학부모인 누리아빠 하승수입니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부실한 아빠와 남편노릇을 하고 있는 서형원 지지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6시40분 쭈뼛쭈뼛하면서도 긴장된 마음으로 집을 나섰네요.
멀리 안산에서 응원오시기로 한 오관영님을 만나러 정부과천청사역으로 갔습니다.
지하철역에 들어오는 시민 2분께 "안녕하세요. 시의원 후보 기호 10번 서형원을 지지하는 자원봉사잡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시예산이 쓰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라는 준비된 멘트를 날렸는데, 굉장히 뻘쭘하더군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오관영님과 함께 저희 조에 배정된 뉴코아 백화점 앞으로 갔습니다. 예상대로 다른 후보분이 이미 나와 계시더군요. 한 사람의 시민에게라도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하자 싶어서, 저는 4단지에서 뉴코아쪽으로 빠져나오는 길목으로 갔고, 오관영 처장님은 별양동 3단지와 4단지 사이길로 갔습니다.
출근하는 듯한 시민이 오시길래 2-3미터쯤 앞에서 미리 꾸벅 인사를 하고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신기하게도 걸음은 바쁜 분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는 들으시더라구요. 한 10미터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기호가 몇번이냐고 다시 물어보시더니 기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오늘 50여분의 시민들을 만난 것같습니다.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들으신 분도 있지만, 바쁜 출근길에도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나이든 어르신부터 맞벌이부부인 듯한 여성들,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가는 주부, 운동하고 다시 출근하시는 시민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식의 선거운동은 처음인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힘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끝나고 만났던 우리 자원봉사멤버들도 다같은 마음이셨던 것같습니다.
남의 일같았던 시의회의 일들이 이제 우리 시민들의 일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은 것같습니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때문에 내일밤부터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오늘 받은 느낌들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합니다.

"무소속 시민후보 기호 10번 서형원", "자원봉사자들 파이팅, 과천시민 파이팅"입니다.



물론 후보도 주민들을 만나면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지요. 어떤 사람은 명함주기에 바쁘지만 명함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같습니다.



둘째, 온라인의 적절한 활용입니다. 이메일로 홍보자료를 보내는 것은 물론, 블로그를 통해 후보가 유권자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특히 젋은 유권자들에게는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들어올 것을 권했고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도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창의적인 선거운동 방식입니다. 대형 유세차를 사용하는 대신에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풀로 색종이를 오려 붙여서 풀잎차라는 것을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풀잎들이 떨어져 다시 붙이느라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원된 사람들이 율동을 하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고, 휴대용 앰프를 들고 다니면서 연설하고, 야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빔프로젝트로 준비된 파워포인트 공약자료를 보여주면서 후보가 정책설명을 5-10분 정도 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유권자들은 이렇게 새롭고 참신한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후보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어쨌든 선거운동을 하면서 우리 선거법이 참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돈선거를 막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행동을 일일이 막는 식으로 되어 있다보니 선거운동을 하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미국에서 오바마가 한 것처럼 호별방문(door to door)을 하거나 홍보물(유인물)을 나눠주며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전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 웃기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미국식을 좋아하면서 미국 선거제도는 따르지 않는군요.

그렇지만,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우리 식의 풀뿌리 선거운동을 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참여하신 자원봉사자들에게 의미있는 날들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운영하는 것을 총괄한 이해정 님의 글을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읽어보시면 풀뿌리 선거운동의 단맛과 쓴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를 보냈어요
늦은 저녁을 먹고 우물터에 멍하니 앉았습니다.

예전같지 않은 느낌으로 이곳 저곳이 보입니다.
무심하고 평온(?)한 과천에다 불을 땡겨 보겠다고 골목 골목 찾아다닌
힘든 시간들이 어느새 추억이 되었는지 전보다 정겨워 보이네요.

내일이면 버려두었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니 지금이 아니면 여러분께 인사할
여유도, 배짱도 안 생길 것 같아 여기 올려둡니다.
(아~ 이 게시판이 이리도 낯설다니..제대로 글한번 안올린 게으름이 들통나는 순간이군)

짧았지만 서형원 캠프와 만났던 시간들은 제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거리 홍보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우리 일이었는데요(아마도 작업반장?)

18일 본선거 첫날부터 열과 성을 다해 뛰었던 많은분들의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일이었지요.
그냥 '자원봉사'라고 말하기에 아까웠던 순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일이며 싸움이라 생각하신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이거 될만한 일이구나, 확신도 생겼지요,

생업에 대한 위기감과 쏘셜 포지션을 내려놓고 커밍아웃한 도우미들은 모두 48명이었습니다.
(출근길 홍보에 한하여-작업반장 추산)
투표전까지 7차례 진행했고 연인원으로 헤아리니 160명이 넘습니다.
개중에는 부부가 차례로 참가한 속없는 팀도 더러 있습니다. ^^

출근길 홍보가 끝나면 오전, 오후 길거리 유세를 나서거나 지인들에게 전화작업들을 합니다.
무슨힘이 이끄는 것인지요, 얼마나 적극적인지 옆에서 혀를 내두릅니다.

풀잎차를 꾸미느라 꼬박 이틀을 얼굴이 핼쓱하도록 힘쓰신 여러분들,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수고로움이 다 전해지더이다.
암튼 애들 꼬시는데는 풀잎차가 톡톡히 몫을 했답니다. ㅎㅎ

한분 한분 보석보다 귀한 시간과 마음을 함께 해주신것 정말로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어째서 병이 안날까 신기하기만 했던 수행'조' 선생님. 오늘에사 좀 피로해 보이시더군요~
허리가 아프도록 풀잎차를 몰고 다니신 플랑카드 '문'선생님, 비오는 새벽의 선전전이 최고였습니다.
정확한 업종은 알 수 없사오나 그렇게 오래 생업을 버리셔도 되는지, 후보만큼 새까매 지신 서*원 선생님

맨날 북새통인 사무실에 한결같이 지키신 영란샘. 팽팽하게 긴장할때 즐거운 액션으로 오샘~,
우리를 격려하여 (본인은 펄쩍 뛰시겠지만 사실 이것은 '달달볶는'것이다) 새롭게 길위에 세우는 '하' 샘,
미모는 후보에 뒤지나 후보보다는 긴장감이 덜한 고로 우리에게 인기 좋~았던 가라 후보 '현'샘,
식사시간 갑자기 냉정해지기는 하지만 나타나면 왠지 마음이 턱 놓였던 '송'샘
황캠, 서캠 함께 걱정하느라 더 바빴던 '필', '경' 샘

그리고 너무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여성동지! (통칭)언니들...
덕분에 휴가 잘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형원 선수와 제일로 힘들었을 가족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후보님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어머니'하면 떠오를 것입니다.
모두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이다음엔 그 해 5월이 빛나는 시절이었다고 다들 기억할 수 있겠지요?

이상, 뒷풀이에는 가지도 않고 꼬장만 부린 사람입니다.
아주 푹~ 쉴 수 있는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