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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치 이야기

풀뿌리 자치의 힘으로 권력의 횡포를 이기다 : 부안 주민투표 5주년

장내에 갑자기 침묵이 흐르고 참석한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5년전 그날을 회상하면서, 아마 너무도 힘들었고 또 가슴벅찼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지난 2월 14일 전북 부안 수협강당에서 '부안 방폐장 주민투표 5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사전에 영상을 보고나서, 원불교 김인경 교무님께서 단상에 올랐을 때에, 김인경 교무님은 목이 메어 잠시 말문을 잊으셨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도 목이 메었습니다. 


 
5년전 이맘 때 쯤에는 눈이 참 많이 왔었습니다. 저는 그 때쯤 전북 부안에 있었습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민간차원의 주민투표를 준비하러 내려갔었지요. 당시 전북 부안에서는 방폐장문제로 주민들이 정부와 충돌하면서 수십명이 다치고 구속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매일 촛불집회가 이어지는데,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해서 진압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어서 아무 권력도 없는 주민들이 방폐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치 주민투표'를 했었지요. 주민들의 의견이 방폐장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정부에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위해서 서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도우려 부안에 내려갔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주민투표를 준비해서 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투표함, 투표대, 투표용지도 직접 제작해야 했고, 투표관리위원, 투표참관인을 조직해서 40개가 넘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달라 붙었습니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투표인 명부를 만드는 분, 읍.면마다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어느 집에 누가 사는 지를 확인하시는 주부들, 투표와 개표관리를 위해 날밤을 새시던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셀 수도 없던 주민들과 외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치러냈지요. 인구 7만이 안 되는 부안군에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움직여서 만들어낸 축제같은 투표였습니다.



전라북도와 부안군에서는 끝까지 방해를 했지만, 주민들의 힘으로 주민투표를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정말 '자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선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부안에서는 갈등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방폐장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군수는 그 후 2번의 선거에 나와서 거푸 떨어지면서 주민들의 심판을 받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 또 출마할 걸로 예상된다는 군요. 

주민투표 후에 부안에서는 여러가지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주민투표를 통해 결집된 자치에 대한 욕구와 힘이 여러가지로 분출되며 새로운 움직임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부안독립신문이라는 독립지역언론이 만들어져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을 여러 곳에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자립마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마을도 있습니다. 바이오디젤유를 얻을 수 있는 유채꽃을 많이 심고 있습니다. 단지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움직임들입니다. '부안아카데미'라는 자발적인 학습모임도 작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관에서 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운영하는 학습모임입니다. 그 외에도 읍.면에서, 마을에서 여러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활발한 움직임들이 있을 것같습니다.


전국 여기저기에 좋은 고장들이 많지만, 부안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산과 들, 바다를 고루 갖춘 고장이지요. 그래서 '생거부안'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부안주민들이 주민투표의 역사를 살려서 부안을 '자치의 고장'으로 만들어가고, 부안의 미래를 부안답게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5년전 주민투표 당시의 영상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