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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대한 기억, 그리고

다가오는 6월. 그리고 민주투사 노무현 1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곧 6월이 다가온다.
매년 6월이 되면, 뜨거웠던 22년전 1987년의 6월을 떠올리게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리고 앞으로도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에 뜨거웠던 부산의 거리에 있던 노무현에 대해서는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체포, 구금, 고문이 횡행하던 시절에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그의 모습이야말로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987년 6월을 전후한 노무현의 삶을 객관적인 기록과 자료들을 통해 한번 정리해 본다. 이것은 그를 기억하고, 다가오는 6월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몸짓이다.


<6월 항쟁 당시의 서울거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8년 국회의원이 되기 전 노무현은 변호사였지만, 그와 동시에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주요 인물이었다.   


1998년 6월에 나온 '부산민주운동사'라는 책자를 보면, 1987년 6월 직전의 그리고 6월 당시의 노무현을 알 수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에 부산은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지역중 하나였다. 수십만의 인파가 부산의 서면에서부터 남포동까지를 메웠다. 이 시위를 이끌었던 조직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이하 부산본부)'였다.

그러나 부산 본부에서의 노무현의 역할을 보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1985년 결성된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이다. 이 조직은 부산본부의 밑바탕이 된 조직이다.

1985년 결성된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의 발기인 명단을 보면, '노무현 변호사'의 이름이 보인다.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한 문재인 변호사의 이름도 같이 찾아볼 수 있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발기인 명단>
송기인(당감성당 신부), 박우순(카톨릭의사회 회장), 서상환(화가), 유기선(영락교회 장로), 손덕만(온천성당 신부), 윤성재(봉래성당 사목회장), 백금숙(음악인), 심응섭(한민교회 목사), 김영곤(범일성당 신부), 김광일(변호사), 박순금(중부교회 장로), 박광선(산정현교회 목사), 오수영(초량성당 신부), 문재인(변호사), 김정한(소설가), 우창웅(부산진교회 장로), 허봉(개인사업), 노무현(변호사), 최성묵(중부교회 목사), 최기준(항서교회 목사), 조돈만(전 국제신문 기자), 이흥록(변호사), 김기수(낙동교회 목사), 염영일(성베드로 교회 신부), 김세창(사직성당 사목위원), 윤정규(소설가), 이원걸(한무리교회 목사), 전병호(남천중앙교회 목사), 배환균(전 국제신문 부장), 김희로(시인)
 

이 부산민주시민협의회는 종교계를 포함해서 부산지역의 민주인사들이 총 결집된 조직이었다. 1985년 당시에는 무차별적인 체포와 고문이 횡행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런 공개조직을 결성해서 활동하는 것 자체에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부산민주시민협의회는 결성과 함께 탄압과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창립총회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1985년 5월 3일 부산 YMCA 1층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가지려고 했으나 경찰과 기관원의 불법 저지와 대회장 난입 폭력행사로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했다.
당시의 독재정권은 행사장 주변에 사복경찰과 전경 300명을 배치하여 모든 길을 차단해서 시민, 학생들의 참가를 원천봉쇄하려 했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참석자들과 경찰간에 몸싸움이 벌어져서 송기인 신부, 노무현 변호사, 고호석 인권선교위 간사, 사회선교회 부산지구협의회 최준영 총무 등이 고관파출소로 불법 감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부산민주시민협의회는 1986년에 확대개편하며 활동을 이어나간다.

** 재미있는 것은 당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창립총회에 기념강연을 하려 내려온 강사가 그 당시에 월간조선 기자였던 조갑제씨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극우논객으로 유명한 조갑제씨를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하승수 씀
(자료는 주로 부산민주운동사편찬위원회가 1998년에 낸 '부산민주운동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 아카이브시스템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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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부산 민주시민 협의회 결성 선언문
우리는 지금 핵 공포와 외세의 틈입이라는 어려운 조건 하에서 남북의 평화통일과 자유 민주 국가의 건설이라는 커다란 과업을 성취해야 될 역사의 시점에 서 있읍니다. 이런 전환점의 슬기로운 극복을 위해서는 민주 시민의 역량과 국민적 지혜의 집결이 참으로 필요하다 하겠읍니다. 그러나 언로는 막혀 토의의 광장은 없고, 국민의 이성은 퇴폐와 향락 문화의 도전에 시달리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마음껏 뛰놀거나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하지 못하고,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민주 양식과 나라 사랑하는 이들의 충정은 깡그리 외면 당하며, 더구나 사회 전반이 시민들의 총체적 의사와는 무관한 힘의 독단으로 진행되고 그 그늘에서 시민의 자유 의지가 시들며 근로자의 신성한 권익이 무참히 희생되는 사 례를 보아 오고 있읍니다. 이런 현실에 안타까움과 책임을 느끼는 시민들로서 뜻을 모아 민족의 나아갈 길을 한 번 더 궁구해 보 고 민주 역량도 함양하면서 동시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 슬기를 모으고자 "부산 민주시민 협의회"를 결성하게 되었읍니다. 이는 작게는 형이하학적 문화에 마비되어 가는 개인의 양심과 용기를 일깨우자는 것이며 크게는 5천년 민중 역사를 꾸려 온 민족적 의기를 되살리고, 나아가 금수강산 산봉우리 마다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하자 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용기있는 민주 시민의 적극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강 령 一. 우리는 양심의 속박을 받지 않으려 하고 자유 의지를 가진 시민과 뜻을 같이하며 언제라도 함께 노 력하고자 하는 이를 환영한다. 一. 우리는 민주의 기본인 진리, 자유, 평등, 평화를 참 가치로 여기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一. 우리는 상식이 부인당하는 여하한 형태의 구조도 거부하며,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가 실현 발전되도 록 노력한다. 一. 우리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모든 국민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一. 우리는 근로자와 농민, 학생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권익 을 위해 노력하고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一. 우리는 국제 관계에 있어서 주권이 모독되거나 국익이 희생되는 것을 여하한 이유로도 묵과할 수 없 으며 특히 이 강토가 핵 볼모화 되는 경우를 반대하며 또한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형태의 침해도 반대한다.
생산일 : 1985년 5월 3일
생산자 : 발기인 (서명순) 송기인 (당감성당 신부) 박우순 (가톨릭의사회장) 서상환 (화가) 유기선 (영락교회장로) 손덕만 (온천성당 신부) 윤성재 (봉래성당사목회장) 백금숙 (음악인) 심응섭 (한민교회 목사) 김영곤 (범일성당 신부) 김광일 (변호사) 박순금 (중부교회 장로) 박광선 (산정현교회 목사) 오수영 (초량성당 신부) 문재인 (변호사) 김정한 (소설가) 우창웅 (부산진교회 장로) 허봉 (개인사업) 노무현 (변호사) 최성묵 (중부교회목사) 최기준 (항서교회 목사) 조돈만 (전 국제신문기자) 이홍록 (변호사) 김기수 (낙동교회 목사) 염영일 (성 베드로교회 신부) 김세창 (사직성당사목위원) 윤정규 (소설가) 이원걸 (한무리교회 목사) 전병호 (남천중앙교회 목사) 배환균 (전 국제신문 부장) 김희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