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

6월 민주항쟁과 민주투사 노무현(마지막) ** 기록이 없는 역사는 교훈이 되기 힘들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아카이브가 없었다면 우리는 87년 6월 당시 노무현의 모습을 객관적인 기록으로 되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6월 민주항쟁 이전부터 노무현 변호사는 정권에게는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다. 1987년 2월 7일 열렸던 박종철 열사 추모제에서 연행당한 노무현 변호사에 대해 검찰은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현직 변호사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 자체도 이례적이었지만, 재판부가 영장을 기각했음에도 4차례나 재신청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노무현 변호사의 역할이 위협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6월 민주항쟁의 중심조직이 되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을 노무현 변호사가 맡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 더보기
다가오는 6월, 그리고 민주투사 노무현2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창립에 참여한 노무현 변호사는 상임위원중 1명으로 선출되고 노동문제분과를 맡게 된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는 1985년에 강연회 개최, 성명서 발표, 양심수 면회 및 변론 등의 활동을 펼치는데, 노무현 변호사는 "학원안정법 찬반토론회"에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연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1985년 11월 25일 부산 YMCA 1층 강당에서 열린 '민주제 개헌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김광일 변호사와 함께 개헌의 방향과 실천과제에 대한 강연을 3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 강연회에는 200여명의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참석했다고 하며, 사보경찰이 녹음기를 소지하고 강당에 들어와 있다가 들켜서 쫓겨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시국은 점점 더 폭압적으로 되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