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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연재

지방자치예산은 중립적인가?


킨텍스엔 하루 3억, 장애인 복지엔 4500만원
[풀뿌리가 정치를 바꾼다 ⑧] 고양시 예산지도를 보면 삶이 보인다
09.03.30 09:37 ㅣ최종 업데이트 09.03.30 09:43 오관영 (ohkycan)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수 기득권 세력이 주도해 온 정치, 규제 완화와 개발주의 일변도의 정치는 유권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특히 지역정치, 즉 '풀뿌리정치'가 전횡과 부패, 이권 등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잡기 위해서는 풀뿌리부터 흔들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풀뿌리 정치를 살리기 위해 그간 정치의 대안을 고민해온 시민사회 모임 '좋은정치 씨앗들'과 공동으로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독자와 시민기자 여러분의 많은 제언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고양시의 예산을 보기 쉽게 분석한 신문
ⓒ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
풀뿌리

 

위 그림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아름다운 예산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가 2007년 6월에 발행한 '아름다운 예산신문'이다.

 

여성민우회, 고양시민회, 녹색소비자연대, YWCA 등 고양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는 지난 2003년부터 예산 편성 과정 등에 주민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예산을 통해 시의 정책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는 시의회 방청 및 모니터, 고양시 예산분석, 참여예산 제안사업, 찾아가는 예산학교, 시민 참여조례와 참여예산조례 제정 운동 등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소개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예산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이 신문을 만들어서 배포했다.

 

이 4쪽짜리 신문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고양시 일산 서구에 살고 있는 김 차장을 통해 고양시민들이 얼마만큼의 세금을 내고 있는지, 고양시가 공무원 인건비, 도로건설, 한국국제전시장 킨텍스(Kintex) 등 공공시설운영, 노인복지, 학교경비 보조금,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을 위해 하루에 지출하는 예산규모를 설명하고 있다.

 

4쪽짜리 신문을 보면 지역이 보인다

 

둘째, 부모의 진료나 공연관람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일시보육시설 설치, 아이들 학교급식에 우리 쌀 등 친환경식재료 제공, 도서관 설치 및 옥상공원 조성 등 주민참여로 편성된 아름다운 예산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은 고양시 주민이 주체가 돼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가 만든 예산 신문
ⓒ 고양시 예산감시네트워크
풀뿌리

 

셋째, 위 그림처럼 고양시 예산지도를 통해 킨텍스(Kintex), 어울림누리, 아람누리, 종합운동장, 노래하는 분수대 등 고양시가 운영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형시설물 등의 현황과 적자운영 등의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킨텍스 운영에 하루 3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장애인 복지에는 4500만원을 쓴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산은 지역주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양시의 김 차장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물을 공급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버스운영을 지원하고, 도로를 관리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가 있는 보육시설과 학교급식 등을 지원하는 돈이 고양시의 예산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김 차장의 부인이 아이를 잠시 맡기는 일시 보육시설, 아이를 맡기고 문화공연를 본 어울림누리극장,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간 도서관과 호수공원의 노래하는 분수대 등도 고양시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김 차장 가족은 고양시에 킨텍스를 하나 더 건설하는 것과 평생학습원이나 도서관을 더 건립하는 것 가운데 어디에 세금이 쓰이는 걸 원할까?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지출하는 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정책과 사업은 예산이 있어야 실현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산은 정책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예산을 알면 지역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예산은 중립적이지 않다

 

  
서울환경연합 등 '한강운하백지화 서울행동 준비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한강운하 152억원 예산삭감 촉구' 기자회견에서 예산낭비와 환경 파괴하는 한강운하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한강운하

 

이렇게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의 비전을 반영하게 되는데, 이는 예산이 중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방자치단체가 어떠한 '가치'에 기초해 있는가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모든 시민의 실제적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보통 예산결정에 의해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삶의 수단이 적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즉 소득보조나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교육과 건강과 같은 영역의 지출은 그들의 미래의 전망과 삶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산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 즉 여성, 빈곤층, 장애인, 기타 사회, 정치적 소수자 등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이러한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예산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종부세 감세로 지방자치단체의 교부금이 줄고 그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이 축소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러한 몫을 분배하는 것은 의회의 일이지만 지방의회가 여성, 장애인, 청소년, 이주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를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 뿐 아니라 전문성도 떨어진다.

 

2007년 10월 국정감사 때 정성호 의원의 지적에 따르면 광역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예산삭감은 23건으로 48%, 증액 및 변동 없음은 25건으로 52%,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204개 기초단체의 경우는 55%인 113개의 기초단체에서 3년 연속 삭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예산이 책정되면 별다른 수정 없이 통과된다는 뜻이다.

 

현 지방의회의 객관적인 한계-의회 사무처에 대한 인사권, 전문성, 자치입법권의 제약, 중앙정치에 의한 지방정치의 지배와 특정지역의 일당 독점 현상 등-를 고려한다 해도 의회가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안 되면 게시판으로라도 달려가자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초록정치연대의 후보로 나서 과천시에서 당선된 서형원 의원은 2009년 예산심의를 앞두고 과천시민들을 초청해 '시민참여워크숍 - 2009년 예산을 통해 과천의 미래를 내다본다'를 개최했다. 과천시 예산을 분석하여 예산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서형원 의원은 시민들에게 묻는다.

 

"조형물을 세우는 예산 10억원으로 학교급식용 쌀을 유기농으로 바꿀 수 있다면? 아파트 도색 예산은 수억원씩 지원되는데, 휠체어 타이어 고칠 돈 10000원을 못 구해 장애인이 집에 들어 앉아 있다면? 관변 문화예술단체에는 엄청난 예산이 지원되는데, 청소년 락 밴드는 연습실이 없어 다른 동네 연습실을 전전한다면?"

 

그리고 이렇게 되묻는다.

 

"이를 해결하는 데 예산은 많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정치에서 소외됐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런 억울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있다. 하나는 참여예산제와 같은 주민참여제도를 통해 직접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배분에 참여하거나 의원들이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분배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청소년, 장애인,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철거민 등을 제대로 대의하는 사람들을 의회로 보내는 것이다.

 

의회에 성별로는 여성이 반이 되고, 세대별로는 청소년이나 노인을 대의하는 의원도 있고, 장애인이나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대의하는 의원들이 최소한 1명씩은 있어야 제대로 된 예산배분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그만 억울해 하고 나에게 필요한 예산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생각이 났으면? 살고 있는 지역의 자치단체와 의회 게시판에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